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훈련에서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01.29. 뉴시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는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충돌로 잡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이들을 지켰어야 할 클린스만호의 주축들은 자기변호와 커리어만 더 신경 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6일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과 결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1960년 제2회 대회 이후 64년 만의 우승을 노렸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준결승 탈락한 데 이어, 선수단 장악까지 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경질됐다.
지난해 3월 파울루 벤투 전 감독 후임으로 한국과 연을 맺었던 클린스만 감독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까지 동행이 예정됐던 계약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클린스만호는 해체했으나,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탁구 게이트'가 논란이다.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저녁 자리에서 탁구를 치려던 이강인과 이를 제지하던 손흥민 사이에 물리적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이 이에 반발해 주먹을 날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황이다.
관련 사실이 불거진 이후 이강인 측 대리인은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이강인이 탁구를 칠 당시에는 고참급 선수들도 함께 있었고, 탁구는 그날 이전에도 항상 쳐오던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이후 자세한 경위 설명이나 입장은 없는 상태다.
축구협회도 관련 내용으로 추가 조사나 입장을 밝힐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을 보호해야 할 조직이 방치 쪽으로 방향을 잡은 분위기다.
영국 매체 더선이 14일(한국시간) 손흥민이 아시안컵 요르단과 준결승 전날 저녁 이강인 등 후배들과 언쟁 과정에서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가락에 붕대를 맨 손흥민과 이강인. 2024.02.14.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떠난 클린스만 사단까지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먼저 수장이었던 클린스만 전 감독은 17일 독일 매체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카타르 아시안컵과 관련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한국 대표팀에 불어넣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호주와 8강전은 드라마였다"며 "스포츠 측면에서 본다면 아시안컵은 성공적인 결과였다"며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클린스만 전 감독의 오른팔로 평가받는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전 수석코치도 오스트리아 매체 '크로넨 자이퉁'에 기고한 칼럼에서 자기변호에 급급했다.
특히 손흥민과 이강인의 싸움으로 준결승에서 탈락했다고 짚었다.
헤어초크 전 수석코치는 "중요한 경기 전날 저녁 팀 내부에서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톱스타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매우 감정적인 싸움으로 팀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며 "몇 달에 걸쳐 공들여 쌓은 것이 거의 모든 것이 단 몇 분 만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또 클린스만호가 해체한 배경에는 정치권의 압박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정몽규 협회장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압박이 컸다"며 "그는 항상 우리를 지지했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다"고 밝혔다.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튀니지와의 평가전을 하루 앞둔 12일 경기 파주시 NFC에서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왼쪽은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 2023.10.12. 뉴시스
다른 스태프들도 크게 다르지 않는 분위기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클린스만호에 분석관으로 합류한 마크 포더링햄도 자신의 커리어에 더 신경 쓰는 모양새였다.
그는 영국 매체 '더 선'의 스코틀랜드판을 통해 "스코틀랜드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나를 엄청난 경력을 쌓은 클린스만 감독이 불렀다. 그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고, 정말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 같은 사령탑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를 정말 존경하며, 함께 일할 기회가 또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팀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 부족보다는, 축구계 내 유명 인사로서 미치는 영향력에만 주목했다.
한국을 떠났다는 점을 고려해도, 누구 하나 선수를 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클린스만호가 팀보다는 개인이 우선했다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흔들리는 대표팀을 오는 3월 A매치 전까지 다잡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인 가운데,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전 감독 후임을 선임하기 위한 작업을 앞두고 있다.